한국사고급

영월 단종제에 가다

艸貞 2018. 4. 29. 18:58

경희대 아고라 광장(글로벌존)에서 교수님의 특강?을 들은 후 청량리역으로 이동했다.



                                  기차표


낼 영월에서 열리고 있는 단종제에 가기 위해 원주에 살고 있는 00학우집으로 가는 길이다.

주소 알려주고 집으로 오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원주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내일 아침 식사할 김밥을 2줄 샀다.


역에서 이야기하면서 집까지 함께 걸어갔다.


내일 아침 7시에 나가야 한단다.

언니집 작은 방에서 잤는데 아파트가 난방이 안 들어오는지 콘크리트 찬기가 올라와서,

벽장안에 있던 이불들 다 꺼내어 포개깔고 잠을 잤다.

실컷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에 깨우는 소리가 났다.

졸립다. 자고 싶다.

털고 일어나 세수하고 김밥을 먹었는데 6시 40분에 나가야 한데서

김밥 다 못먹고 반줄 남은 거 가방에 집어넣었다.

걸어서 터미널에서 영월가는 7시 10분발 차를 탔다.

버스안에서 이 얘기, 저 얘기 주저리 주저리 나누면서 영월을 향해 고고씽~


1시간 반정도 가니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장릉으로 택시타고 이동했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장릉(단종의 능)


원래는 2,000원의 입장료가 있으나 단종제 기간은 무료다.

단종역사관에 들어갔다.



                        단종역사관



      조선왕조 계보도


단종역사관안에는 단종 금보· 정순왕후 금보, 단종실록, 장릉도, 복위부묘도감의궤 반차도,

문종실록, 육선생유고(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의 시문집을 모아 간행한 책으로

박팽년의 7대손인 박숭고가 편집하여 발간하였다.), 이선생유고, 세조실록, 매죽헌선생집, 경은일고, 어계일고, 추강집등 전시되어 있고, 지하1층 전시실에는 세종대왕· 단종대왕의 태실을 개수하는 내용을 기록한 의궤를 볼 수 있는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단종문화제에 대한 자료와 왕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의복,

교육, 놀이를 둘러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고려사절요



김종서가 고려시대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책으로 32권으로 이뤄졌다.

고려사가 기전체로 서술된 것에 비해 고려사절요는 연·월순으로 기술되었으므로

정치적 사건 추이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정자각 가는 길



     개천



      소나무



토종민들레


그리고 우리는 장릉을 향해 올랐다.


장릉


장릉(세계유산, 사적 제 196호)

조선 제6대 단종의 능

단종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그 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월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 해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1516년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698년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정순왕후능과 합장시켜 드려야겠다.



                                 장릉 길 올라가는 길에 핀 진달래



                                 장릉 길 옆에 핀 야생화



장릉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영월다도회에서 관람객들을 위해 차를 준비해 주셨다.



                    연꽃차



        국화차



      00차




     정자각


정자각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집,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단종비각


단종비각

영조9년(1733년)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영천


영천

이 영천은 장릉 서쪽에 있는 우물로써 정조15년(1791)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때 제정으로 사용하였다. 보통때에는 조금씩 샘물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하였다. 우물이 깊이는 1.5m정도이며 하부는 화강석 돌담으로 둥글게 쌓여 있고 상부는 정방형이다.



영천내 물



배식단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단종제를 끝내고 배식단으로 향하는 향림들.



배식단에 제를 지내는 향림들.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으나 영월호장 엄홍도는 삼족 멸문의 화를 무릅쓰고 시신을 거두어

엄씨들의 선산인 동을지산(현 장릉)에 매장하였다. 단종이 승하한지 241년이 지난 1698영(숙종 24)

마침내 노산대군이 단종으로 복위되고 능호도 장릉으로 추봉되었다. 또한 장릉은 1970년 사적 제 196호,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매년 4월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고자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행사로 시작된 단종문화재가 52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27대 임금 중에서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단종, 승하한지 550년만인 2007년 국왕을

보내는 백성의 마음을 담아 국장을 치러 드렸고 단종국장 재형행사는 단종문화재에서만 볼 수 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어린이들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청령포로 향했다.

차도 없고, 택시도 없으면.. 걸어가야제.



친절한 영월경찰 아저씨


청령포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출렁다리에서는 출렁여야 해...



                                  출렁다리 위 나




                                 출렁다리위의 나



청령포에 갔더니 언니의 친구가 이곳에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계셨다.



올갱이 국밥, 올갱이 비빔밥





메밀전



점심 식사후 우리는 청령포로 향했다.






                                  청령포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상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45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첨지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에 있어

호장 엄홍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2년(1726)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 39년에 세운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세워져 옛일을 전하고 있다.




      단종대왕




단종을 향해가는 소나무


소나무는 역물이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1763년 세워진 것으로 오석으로 제작되었는데,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표비 전면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2년에 세운 비석이다.

금표비는 단종께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2년에 세운 비석이다.



      금표비 후면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숭정구십구년 이라 음각되어 있는데,

이 뜻은 동서로 삼백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숭정 99년 이라는 내용으로, 당시 단종에게도 이와 같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관음송



관음송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 것은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하여

볼관(觀), 들었다하여 소리음(音)자를 써 관음송이라 전한다.



      관음송의 윗 모습




      야생화



      망향탑



망향탑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

다는 탑으로 그 당시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헤아일 수 있다.



청령포에서




      해가 뉘엇뉘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