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방한 홈 스테이

艸貞 2008. 3. 13. 12:22
 

방한(訪韓) 홈스테이를 마치고....

 

◇서론(序論)


 이야기는 한국(韓國)의 평범(平凡)한 주부(主婦)가 일본(日本)의 평범(平凡)한 주부(主婦)를 만나 4박(泊) 5일(日)의 함께한 시간(時間)들을  적은 글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言語)를 사용(使用)하지만 함께 생활(生活)하며 관광(觀光)의 목적(目的)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文化)를 이해(理解)하고, 언어습득(言語習得)에 있어 공부(工夫)가 아닌 함께 생활(生活)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일본(日本)에서 사카 키 바라 요우 (原 陽) 라는 분이 "Hippo Family Club"을 1981년에 창립(創立)하여 여러 나라 언어(言語)를 동시에   습득(習得)하되 자연습득(自然習得)을 기본(基本)으로 하고 “홈스테이 활동”등을 지원(支援)하고 있으며 현재 교류(交流)하는 나라도 21개국에 달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번 기회(機會)를 통해 일본인(日本人) 친구(親舊)를 만들었고 이러한 정보(情報)를 얻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녀와 저의 4박(泊) 5일(日) 일정에 여러분을 招待 하겠습니다.


◇본론(本論)


1] 설레 이는 만남


본 노래가 좋아 (오리지날 일본노래가 아닌 일본말로 바뀌어진 韓國歌謠를 말함.)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다 いちごいちえ(일생 한번 만나는 인연) 이라는 카페에서

노래를 듣다가 주로 桂銀淑의 “J”, “釜山港へ帰れ”, “すずめの淚”등이고

五輪眞弓의 “戀人よ” 와  幸子의 “さちこ”는 남편과 내가 즐겨듣는 일본노래이다.

즐겨 찾는 홈페이지 한 구석에서 글씨는 작았지만 내 눈에 확 빨아들이듯이

크게 클로즈업되는 한눈에 다가온 문구(文句)가 보였다. 

이름 하여 “홈스테이“

홈스테이는 또다시 “유니랭크” 라는 곳으로 나를 인도(引導)하였고 본 프로그램을 

신청(申請)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50가정을 뽑는데 신청자(申請者)가 너무 많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신희수라는 담당자(擔當者) 분께 연락(連絡)이 왔다.

어떤 분이 내 집에 오실까 기대 반(半), 설레 임 반(半)으로 시간(時間)은 흐르고,

몇 일 뒤 게스트의 프로필이 전해졌다.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50세(歲)의 주부(主婦)이며

10살 난 아이와 함께 동행(同行) 해 각각 엄마는 우리 집에, 아들은 다른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時間)은 그녀의 모습을 더 궁금(宮禁)하게 했다.

아~~ 드디어 프로필 도착!

프로필안속의 그녀 가족(家族)사진(寫眞)은 평화(平和)로워 보이고 따뜻해 보였다.

나는 처음만난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유니랜드 번역기(翻譯機)를 통해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의 4박 5일 만남을 더 알차게 보내기위해, 이 것 저 것 물으며 소식(消息)을 전했으나

그녀에게 답장(答狀)이 없었다. 혹시나 내가 무슨 알 수 없는 실수(失手)(?)라도 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어갔다. 이틀을 꼬박 기다린 뒤 전화(電話)가 걸려왔다.

어눌하지만 유창한 한국말이 들려온다.

“나도 채 영재 빨리 보고 싶어요.”

전화(電話)를 받고는 안심(安心)하며 두 번째 메일을 보냈다.

또 대답(對答)은 없었다. 무슨 까닭이 있겠지 이해(理解)하며 전화(電話)는 비싸니까

메일로 서로의 안부(安否)를 묻자고 나는 제안(提案)을 하였다.

한참 뒤 메일이 도착했다. 그녀의 p.c실력이 약하다고...

그래도 나는 줄기차게 처음만남의 어색함을 줄여 보고자 5번의 메일을 보냈다.

바쁘고 게으른 탓에 청소(淸掃)도 잘 안 하고 사는 내게 한 달 동안 청소(淸掃)를 하게 해 그녀 덕에 우리 집은 반짝 반짝 깨끗해 졌고, 준비(準備)하는 시간(時間)이 지루한 듯 시간(時間)이 흘렀지만 그녀와의 4박 5일은 더 빨리 흐르리라 생각되었다.

아~~ 2007년 3월 25일은 다가왔고 한국철도공사 동부지사에서 그녀를 만났다.

첫 인상(印象)은 긴 여정(旅程)에 피곤했는지 사진(寫眞)에서 보던 모습보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사진1) 미치코, 남양주호스트아들,엄마,미치코아들,나


2] 4박 5일 여정(旅程)을 열다.


  1). 25일 도착(倒着)한 날


아들은 남양주로, 나는 미치코와 함께 우리 집인 광명(光明)에 도착했다.

나는 미치코와 계획(計劃)을 짜기 위해 한국(韓國)에서 가 볼 곳이나,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느냐 물었다.

언어(言語)는 영어(英語), 한국어(韓國語), 일본어(日本語), 중국어(中國語)가 동원되었고

유니랭크 번역기(翻譯機)를 사용(使用)하여 언어소통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그녀는 지난번에 한국(韓國)에서 자기 집으로 홈스테이를 했던

고등학생(高等學生) “정명”을 만나길 원했다.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해 정명과 그녀의 전화(電話)를 연결(連結)해

주었지만 전화(電話)는 내게 돌아와 첫날 정명과 광명(光明)에서 만났다.

그녀의 피곤(疲困)함을 배려(配慮)해 정명과 어머니는 광명(光明)까지 와 주셨다.

광명(光明)에서 함께 저녁식사(食事)를 하며 그들은 반가운 회포(懷抱)를 풀었다.

저녁식사는 함께 생물 낙지볶음을 먹었다.

정명은 용산고등학교 2학년(學年)에 재학(在學) 중인 학생(學生)인데 일본어에 유창했다.

늦은 시간(時間)까지 있는 바람에 초(初) 저녁잠이 많은 나는

적잖이 불쾌(不快)했지만 미치코와 나를 위해 참았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하고 미치코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첫 날부터 쭉뻣었다.

사실 낼부터의 일정(日程)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얘기할 시간도 없이 첫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2). 26일 둘째 날


어제 저녁에 나는 매일새벽 단전(丹田)호흡(呼吸)에 가는데 함께 가보겠느냐고 했더니

그녀는 함께 간단다.

남편은 일터로 출근(出勤)하고 미치코와 단전(丹田)호흡(呼吸) 장소(場所)에 갔다.

단전호흡 사범(師範)님은 친절(親切)하시게 설명(說明)을 해주셨고

미치코는 신기(新奇)해했다.

 

사진2) 단전호흡하는 미치코(앞 중간 검은색 상의)


단전(丹田)을 마치고 집에 와 아침을 먹고는 함께 김밥을 만들었다.

12시 30분부터 광명(光明)여성(女性)회관(會館)에서

컴퓨터 교실(敎室)에 함께 동행(同行) 했다.

나는 늘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김밥 싸느라 늦어 버스를 타고 갔다.

컴퓨터는 월(月), 수(水), 금(金) 한다했더니 비용(費用)이 얼마냐 물었다.

한 달에 1만원이라 했더니 저렴(低廉)한 가격(價格)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일본(日本)은 학비(學費)가 비싸다고 했다.

컴퓨터 끝나고 셔틀버스타고 오려 했는데 비가 와 버스타고 왔다.

된장 항아리를 열어 놓고 왔기에...

아~~ 내 된장!!! 소리에 미치코는 웃었다.

집에 와서 조금 쉬었다가 강남(江南)으로 오빠를 만나러 갔다.

깨끗하고 정갈한 식당(食堂)에서 등심으로 저녁식사(食事)를 하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일본어로 개사한 “釜山港へ帰れ”와 “戀人よ”를 불렀다.

잘 못하는 노래 솜씨임에도 많은 박수(拍手)를 받았다.

오는 길에는 버스를 타고 오며 시내(市內) 곳곳을 설명(說明)해 주었다.

 

사진3) 오빠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무척 피곤함이 가중(加重)되었지만 미치코는 괜찮다고 했다.


    3). 27일 셋째 날


아침 8시에 기상(起床)하여 단전(丹田)호흡(呼吸)을 광명4동으로 9시 30분에 갔다.

미치코는 이틀째가 되니 단전(丹田)호흡(呼吸)을 잘 했다.

단전호흡이 끝나고 선배언니와 버섯불고기를 구로역 근처에로 먹으러 갔다.

버섯 불고기를 먹고는 미치코와 나는 인사동에 갔다.

 

 사진4) - 인사동 쌈지 길에서

 

돌아오는 길은 그녀에게 서울거리를 보여 주고자 버스를 타고 왔다.

오는 길에 용산을 경유(經由)할 때면 정명이 사는 곳이라고 하니

더 주의(注意) 깊게 둘러보았다.

버스 안에서 삼각지 로터리에 있는 공룡을 찍었다.



사진5) 삼각지 로터리 공룡

 

돌아오는 길에 상도동에 있는 친정엄마께 들렀다.

그녀는 엄마에게 파스도 붙여주고 매우 살가워 하는 모습에

엄마는 그녀에게 따스한 정(情)을 느끼셨나보다.

오빠부부는 회(膾)를 저녁으로 대접(待接)했고, 저녁 식사(食事) 중에 전화(電話)가 왔다.

 

사진6) 우럭회, 멍게, 해삼

 

사진7) 오빠내외, 미치코, 울 엄마

 

정명과 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만나기를 원했기에 함께 용산역으로 갔다.

나는 그녀 혼자 갔으면 바랐으나 복잡한 도심(都心)에 그녀를 유기(遺棄)하는듯한 마음에

함께 동행(同行)하였으나 버스를 잘 못타는 바람에 결국 길에서

시간(時間)이 지체(遲滯)되었다.

정명을 만나느라 또 늦게까지 있게 된 나는 첫날의 불쾌함이 가중(加重)되어

정명의 일본어(日本語)보다 그 어머니의 더 긴 이야기에 좀 유감(有感)스러웠다.

나는 무엇보다도 남편의 저녁식사 때문에 불안(不安)했는데...

연락(連絡)을 미리 하면 괜찮은데 핸드폰에 밧데리도 떨어져가 그냥 늦어져 버렸다.

정명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김을 선물(膳物)하였다.

미치코는 내일 저녁은 집에서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자며,

사과(謝過)하고 미안(未安)해했다.

미치코는 가벼운 샤워를 하며 피곤(疲困)을 몰아냈다.

오늘은 기분(氣分)이 하늘에 둥 떠 있는 야릇한 느낌이었다.

피곤(疲困)해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20일에 군(軍)에 간 아들 녀석의 옷이

아들 방에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진8) 아들에게 온 소포

 

아~~ 저절로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영문 모르는 미치코도 함께 울었다

나중에 설명(說明)을 해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를 빌어 미치코에게 감사(感謝)하고 싶다.

그녀가 내 옆에 있어 내 마음이 많이 따뜻하였노라고...

피곤(疲困)함에 지쳐있을 그녀에게도 내게도 아들 녀석의 소포(小包)는

커다란 사건(事件)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하루는 마감되어지고 속절없는 하루해가 또 넘어간다.


   4). 28일 넷째날


날씨가 흐리더니 급기야 비가 내린다.

나는 미치코에게 하루가 48시간(時間)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새벽에 단전(丹田)호흡(呼吸)은 나 혼자 갔다.

가려던 컴퓨터도 결석(缺席)한 채 비오는 날 함께 집에서 보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사나워 외출하기는 좀 힘들었지만 함께 시장에 갔다.

밖에 나간 길에 동네 근처에 광명(光明) 중앙(中央)도서관(圖書館)에

들렀다 오는 길에 시장(市場)에 들렀다.

 

사진9) 광명 중앙도서관에 간 미치코


그녀에게 사탕과 과자(菓子)를 내가 선물(膳物)로 산다고 했다.

나는 돈 만원어치나 사나 했더니 무려 삼 만원 어치나 샀다.

계산(計算)하고 났더니 그녀는 돈을 내게 건넸으나 받기가 뭐해 그냥 내가 쐈다.

애고 애고~~ 결코 아까운거는 아니고......

내 경우 게스트의 의견(意見)을 물어 선물(膳物)을 장만하려 했으나

어영부영 시간(時間)이 흐르고......

미리 돈 만원내외에서 준비(準備)해 놓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좋은 걸로 선물(膳物) 하면 야 금상첨화(錦上添花)지만..

오늘 저녁은 남편과 함께 식사(食事)하자 했으나 남편이 오늘 바빠 늦게 온단다.

그동안 미치코는 꾸준히 연습(練習)한 장기(長技)도 있었는데...... 

“영재 남편! 나 한국(韓國)에서 일자리 얻었어요.”

   “고장 난 컴퓨터, 냉장고, 세탁끼 삽니다.”

우리 집은 주택(住宅)이라 매일 밖에서 들려오는 야채 차, 계란 차, 두부 차등이 다녀,

그 소리들을 듣고 미치코는 흉내 내었는데, 그중에서도 “고장 난”을 제일 잘했다.

우리는 거실(居室) 바닥을 뒹굴며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미치코는 한국(韓國)에서 직업(職業)으로 삼아도 손색(遜色)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연습(練習)에 연습(練習)을 했건만 실력(實力)발휘(發揮)를 못 해 아쉽다!!!

내일(來日)의 먼 여행(旅行)길이 기다리고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5). 29일 떠나는 날


다른 날 과 달리 오늘 아침은 미치코는 일찍 일어났다. 

집에 가는 것이 좋은가 보다.

그러면서도 개나리, 진달래 사진 찍을 곳을 알려 달란다.

7시(時) 50분(分)에 나 갈 예정(豫定)이었으나 10분(分) 일찍 나갔다.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남기며 광명 고등학교 앞 돌담길에서

마지막 사진(寫眞) 촬영(撮影)을 했다.

 

사진10) 광명고 돌담길에서 마지막으로...


◇결론(結論)


는 이번 홈스테이를 참가하면서 좋은 인연(因緣)을 맺어준

유니링크에 감사(感謝)했다.

미치코는 한국어(韓國語)를 실제로 부딪치는 현장(現場)에서 일본어(日本語)로 표기(標記)해

발음(發音)기호(記號)로 적어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빽빽한 노트에서 그녀의 열정(熱情)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인(韓國人)의 끈끈한 정(情)을 그녀는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기회(機會)를 통(通)해 세계(世界)의 벽(壁)을 뛰어넘어 하나 되는

그 징검다리의 역할(役割)에, 민간(民間)외교(外交)의 장(場)에 그녀와 내가 함께

주인공(主人公)이 되었음이 기뻤다.

나는 영어(英語)로, 그녀는 한국어(韓國語)로 좌충우돌 함께 겪은 4박(泊) 5일(日) 이었지만

언어(言語)가 불편(不便)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가슴으로의 느낌은 다 같기 때문이다.

지구(地久)촌(村)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家族)이었기에...

다음 기회(機會)에는 영어(英語)권(圈) 가족(家族)과 이런 시간(時間)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물론, 영어(英語) 잘 하는 일본인(日本人)도 대 환영(歡迎)!

아~~ 나는 세계(世界)를 뛰어넘은 자유인(自由人)!

끝으로 미치코 가족(家族)의 건강(健康)과 안녕(安寧)을 기원(祈願)하며 우리는

제3의 국가(國家)에서 친구(親舊)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約束)했다.

다시 한 번 유니랜드에 감사(感謝)드립니다.

지구(地久)인(人) 채(蔡) 영재(英在) 파이팅!

지구(地久)인(人) 미치코 파이팅!

메일이 또 서로 오고 가고 있다.

이젠 그녀도 나도 “친구(親舊)로부터” 라고 끝머리에 넣는답니다.

여러분도 지구(地久)인(人)에 끼어 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