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丑年 올해의 슬로건을 "水滴穿石"으로 삼았었다.
"수적천석"
知天命인 올해 뜻깊은 것을 하고자 삼은 슬로건이었다.
한자시험 3급 시험을 보고자 맘먹고...
바빠서 인터넷접수 기간을 놓쳐 종로까지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방문접수를 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땐 내 가방엔 도시락,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나온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책, 돋보기, 안경, 필통, 연습장, 영지차 혹은 매실차등 가방의 무게가 실로 장난아니었다.
아침마다 가방을 둘러메고 단전호흡장에 갔다가 단전호흡이 끝나고나면
도서관으로가서 짬짬히 공부했다.
단전호흡에 무거운 가방메고 가면 함께 수련하는 수련생들이 내게 한마디씩 한다.
"단전호흡 끝나고 산에 가냐고..?"
"그렇다고, 도덕산에 가서 애인도 만나고,
구름산에 가서 좋은 공기도 마신다고..."
나중엔 묻는 질문에 엉터리대답도 하기 그렇고 해서
더 일찍 도서관에 가서 아예 자리를 맡아놓고 단전호흡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오전 3시에 구일중학교에서 시험봤다.
자리도 내가 젤 좋아하는 앞자리네
나 운도 좋으려나봐~~~
시험분위기는 초등학생들이 많은데 놀랐고,
따라온 학부모들이 교실안까지 들어와 아이들을 들볶는 모습(?)이 좀 생소했다.
감독관이 들어오고
"처음 보시는 분 안계시죠..?"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저 처음인데요."
"빨강색 펜과 연필을 쓰면 0점처리 무효가 되니 조심하시고,
수험번호, 이름 꼭 표기하시고 나중엔 제가 확인하니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부자가 울리면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중에 한 학생이 감독관에게 묻는다.
"나가도 되나요..?"
헐~
난 안죽 반도 안풀었는데 벌써 나가다니..
이래서 공부는 젊어서 해야하나봐
간혹 모르고 아리까리한 문제들이 지나가고 150번까지 풀고 다시 검토했다.
검토하다가 하나 틀린것 고쳐서 맞았는데 이런걸 수지 맞았다고 하지
아싸~
대략 70번정도 검토했는데 부자가 울렸다.
감독관 내 시험지만 걷는다.
"다 쓰셨어요..? 만점 안 맞아도 되는데..
애들은 어렵다고 머리 쥐어짜면서들 나갔어요."
엥~
무신말씀을~
뒤에서 책상소리가 나는듯, 의자소리가 나는듯 하였는데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앉아서 문제들하고 씨름하고 땀빼고 애쓰는데 아무도 없다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으나 한자시험 분위기가 이런가 보다.
결과는 12월 14일 발표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2급도 공부해보고 싶다.
누군가 그러더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참 나를 찾기 위해 열공도 했지만 이젠 휴식이 필요한 나
남편과의 상의 끝에 11월 22일 떠났다가 25일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방향은 강원도 양구로 정했다.
흰눈내린 농촌들녘
지난 11월 19일 목요일날 서울은 눈발이 10개정도 날렸었는데 흰눈이 농촌들녘엔 살짝 깔렸다.
우리나라 산천은 언제봐도 멋지다.
버스는 미끄러지듯 잘도 달린다.
덩달아 마음도 개운하다.
월문터널~서초터널~송산터널~미사터널~마곡터널~발산터널~추곡터널~행촌터널~
광판터널~ 동산 ~ 군자터널~동산터널~북방터널~ 동홍천 ~소양강~ 인제터널~서화리~해안
화양강랜드
휴게소에서 먹는 하지감자는 언제 먹어도 맛있단말야
따끈한 커피로 목을 적시고..
강변에서 출발한 버스는 원통버스터미널까지 갔다.
원통버스터미널
우리나라 산천과 들녘은 아름다워
여행할때마다 느끼는것은 우리나라 산천은 어디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갈때도 거의 대부분이 잠을 잔다.
요즘 세태가 바쁘니까 피곤해서 그렇겠지만,
나는 여행할때 내가 꼼꼼히 살피는것이 자연풍광이다.
이제 가을의 옷을 벗어던지고 겨울을 준비하면서 자연은 벌써 내년봄을 준비하고 있다.
암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고 돌아가는 자연은 위대하다.
의자밑 히타가 장난아니었지..
손님도 없는 거의 텅빈 버스가 히타는 빵빵하네...
이래서 시골인심이 서울인심보다 좋다고 하는건가봐
서울에서 오는 여행객 추울까봐서 불 빵빵하게...
허긴 요즘 시골버스야 농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탄다고 하더만..
하늘빛도 예쁜 우리나라
양구에 도착했다.
헉~
이곳에 연탄난로가 있었다.
언제 때보고 이제사 보는 정감어린 풍경이네...
연탄불을보면 70계단이 생각나
시댁에서의 분가후 살던곳인데 상도동 꼭대기 마을이었지
하늘에 맞닿아있어 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생각했었어
둘째아이를 낳고 돌이 될무렵까지 살던 곳인데
추운 겨울날 시댁에 다녀와 여러날 집을 비우면 방은 한기로 가득찼었어
남편은 번개탄을 지피면서
"조금만 기다려, 조금후면 따뜻해질꺼야."
부족투성이 내게 남편은 늘 공주대접을 해주었었어
수많은 세월앞에 이제사 철이 좀 들은겐가
연탄불
근데 왜 난 이것을 보자 "달고나"생각이 날까
소다만 있으면 해먹고 싶은데..
호박고구마와 마는 삶은게 왜 이렇게 단겨..
김장도 하네...
난도 김장도 해야 하는데...
시골이라서 그런지 밭에 배추가 그냥 버려진게 많았다.
겉은 얼었어도 까보면 속은 노란게 먹음직스럽다.
독립운동가 韓興三의 손자 한옥수 이사 댁
한 흥 삼(韓興三) 1875. 10. 15~1912. 7. 11
전북 정읍(井邑) 사람이다.
1894년 1월, 20세 청년으로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운동에 참여하여 전주를 거쳐 삼례까지 진출하였으나
일군에게 패하자, 귀향하지 못하고 피신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1906년 음력 4월 무성서원에서 기병한 최익현, 임병찬 의병부대에 참여하 여 정읍, 순창 등에서 활약한 바 있다. 최익현, 임병찬 의병부대의 해산 후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임실 출신의 의병장 정성현(鄭成玄)이 부하 30여 명과 함께 총 20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항일활동을 한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가산을 팔아 총기, 병기 등을 다수 구입하여 1909년 2월 10일, 정성현 의진에 가담하였다.
이 부대에서 양운경·김윤오·김낙필·김기만·이홍길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의 각 촌리를 전전하며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투를 계속 수행하면서 김제군의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고 의병을 모으던 중, 1909년 8월 중순에 일경에 피체되어 같은 해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혹독한 고문으로 출옥 즉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1卷, 國家報勳處, 1994年, pp.314~315.
註·判決文(1909. 9. 13. 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665面 한 흥 삼(韓興三) 1875. 10. 15~1912. 7. 11
다음 카페 "정읍사람들"에서 발췌
이곳은 고추밭도 많고 콩밭도 많다.
오늘은 선옥언니랑 함께 양구마을을 걸었다.
멋진 풍경
휴전선 동쪽끝 참 살기좋은 마을 동막동
산채체험장 안내도
산채체험장 정상에 세워놓은 양구군 이정표
산채체험장 정자(?)
정자 끝으로 선옥언니의 옷자락이 보인다.
두릅, 곰취등 산채체험장을 조성해놓았다.
정자에서 바라본 양구
정자에서 바라본 양구
정자에서 바라본 양구
정자에서 바라본 양구마을이다.
마을이 고즈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비닐하우스는 무척 많다.
헌데 산등성이에 나무가 성큼성큼 심어져 있는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산등성이에는 군인들의 초소가 보이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저 산 넘어가 바로 북한이라고...
시래기 건조중
시래기 건조막사
양구군농업시험장에서 7ha 의 땅에 경작지는 3만여평에 시래기를 수확하여 건조시켜
대도시 대형백화점과 대형마트로 나가는 시래기란다.
시래기 건조막사가 끝도없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매년 5월엔 양구군 곰취축제도 하니 꼭 다시 방문하라고...
시래기 무우들
안개낀 콩밭
이곳은 지형적으로 파로호와 소양강이 가까워 안개가 많이 낀단다.
날씨가 흐리기도 하지만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많다.
사방이 온통 안개뿐이다.
안개낀 콩밭
서리가 내려 풀꽃이 하얗게 꽃을 피웠다.
세워둔 콩단을 한곳으로 모으는 일을 오늘 트랙터가 한다고...
농사도 요즘은 기계가 다 하네...
서리내리고 안개낀 콩밭
서리내리고 안개낀 콩밭
내가 찾던 풍경이다.
이 사진을 화가가 그린들 이런 묘사가 나올까
나무끝에 앉은 서리와 안개입자와 한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네
콩먹은 쥐똥
처음엔 염소똥인줄 알았다.
동그란건 다 염소똥이나 토끼똥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염소나 토끼는 보이지도 않고..
엄마노루와 2마리의 아기노루도 콩먹으러 자주 내려오고 똥도 발자욱도 보았지만..
쥐똥이다.
안개뿐인 양구
안개에 가려 전봇대도 가물가물
양구는 안개도시
배후령정상
배후령을 거쳐 춘천을 거쳐 오다보니 금방 강변
이번 여행을 통해 참 나를 찾는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길을 떠났지만
참 나는 내 맘속에 있더라
여행을 통해 일탈에서 달아나고자 했던 내 맘을 추스려보니,
삶의 부끄러움이 더 한없이 밀려옴을 느꼈다.
익어가는 벼처럼 고개를 숙여야 한다지만
자꾸만 빼어드는 나의 오만함과 거만함을 꾸짖고 싶다.
수요일날 오후2시차를 타고 돌아오려 했지만 차편이 마땅치 못해
목요일날 아침일찍 올라오게 되었다.
철산역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
부랴부랴 나의 발걸음은 수업을 향해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허락해준 남편에게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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