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졌을 때, 내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이름을 새기거라.' 영화 초반 나오는 주인공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유언 일부다. 침묵이 깨어졌을 때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하는데, 침묵이 깨어지는 순간 무시무시한 진실과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영화의 오프닝은 우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라디오헤드(Radio Head)의 <You And Whose Army?>가 깔리며 시작된다.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의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이의 뒤꿈치에 새겨진 세 개의 점(문신)이 보이는데, 이 점은 아이의 가혹한 운명을 표시하는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떠한 상징성을 띠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아이의 눈동자는 보는 이들이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안다는 듯 눈망울은 그렇게 스크린 밖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향해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쌍둥이 남매 잔느(멜리사 드소르모-폴랭)와 시몽(막심 고데트)은 자신들도 미처 몰랐던 아버지와 형의 존재를 어머니 나왈의 유서를 통해 알게 된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그들은 어머니의 고향이 중동이고(영화 속의 국가를 감독은 정확히 밝히지를 않는다), 미처 알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과거이자 진실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걸 공증인이자 어머니의 상사였던 르벨이 준 유언을 통해 알게 된다. 단지 호기심으로 시작한 행동이 아니라 어머니의 유서에 쓰인 것들을 실행하고자 어머니의 과거이자 현재 자신들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몽은 이런 사실을 회피하고 싶어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려 든다.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기 전 잔느는 자신이 조교로 일하는 대학의 지도교수인 니브와 어머니 유언의 내용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잔느에게 "자네의 직감은 항상 맞으니 훌륭한 수학자가 될 수 있다"고 격려의 말을 해준다. 그리고 나왈이 다녔던 다레쉬 대학에서 현재 근무하는 교수이자 자신의 친구 세이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잔느는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면서 어머니의 소지품을 뒤져 보는데,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어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을 마주 한다. 사진 속 나왈의 눈빛은 두려움인지 당당함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잔느는 나왈의 뒤로 보이는 아랍어를 의문스럽게 바라본다. 이제 잔느는 자신들의 아버지와 오빠를 찾는 문제를 풀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다. 다레쉬 대학에서 만난 세이르는 나왈의 과거를 듣고 그 당시를 떠올리며 잔느에게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개의 다리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지만 그 얘기를 듣자고 중동으로 온 잔느가 아니었다. 니브 교수가 말한 A.아버지의 존재 B.오빠의 존재를 찾기 위해선, 그러니까 1+1=2가 되는 자연스러운 답을 얻기 위해 나왈의 과거의 문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야 하지만 마음이 다급한 잔느는 이론 수학의 정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잔느는 다레쉬 대학에서 어머니가 남부 지역 감옥 크파르 리얏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남부 지역으로 가서 마을 주민들을 만나 어머니 얘기를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 나왈 마르완은 절대 입에 담아선 안 되는 존재로 낙인이 찍혀 있다. 어쩔 수 없이 잔느는 그곳에서 간수로 일했던 하르사 파임을 만나 어머니에 관한 궁금증을 물어 본다. 그는 또렷이 나왈 마르완을 기억하고 있었고, 잔느에게 나왈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을 말하기 전 하사르는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잔느는 이미 모든 것과 마주할 용기를 지니고 있다. 그저 호기심으로 나왈의 과거를 알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아야 침묵이 깨지고 어머니의 유언을 실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느가 들은 진실은 영화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진실과 절반만 맞는 것이다. 나왈이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아부 타렉이라는 고문기술자에게 강간을 당한 뒤, 임신을 하고 출산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잔느만이 진실을 모를 뿐 관객은 이미 나왈이 감옥에서 낳은 아이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잔느는 자신이 들은 충격적인 정보를 듣고, 이 모든 계획에 회의적이었던 시몽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재촉한다. 또 다른 쌍둥이인 시몽은 공증인 르벨과 함께 어머니의 고향땅을 밟는다. 나왈의 과거와 마주쳤던 잔느와 잔느가 행했던 방식으로 어머니의 과거를 마주쳐야하는 시몽은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잔느를 캐나다로 데려오기 위해 온 것이지만 시몽도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개의 다리'를 차례로 건너기 위해 어머니의 유언을 따른다.
[그을린 사랑]은 중동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적절히 섞어 서사를 구성했다. 소포클래스의 3대 비극인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와이드 무아와드'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원작자 와이드 무아와드는 소포클래스를 존경한다). 하지만 영화는 연극과는 다르게 각색이 되었다고 감독인 드니 빌뇌브는 말했다. 물론 연극적 성격의 서사 진행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1.쌍둥이 2.나왈 3.다레쉬 4.데레샤 5.남부지역 6.크파르 리얏 7.노래하는 여인 8.샤르완&잔느 9.니하드 10.샴셰딘> 이렇게 열개의 장으로(소제목) 영화를 전개하고, 교차 편집을 통해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언뜻 이야기의 구성을 보면 복잡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게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시종일관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과거로부터 현재의 시점과 동일시하게 보이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쌍둥이 남매와 함께 나왈의 고향(과거)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점점 커다란 진실에 닿을수록 관객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범상치 않은 일이 생길 거라는 직감을 할 수가 있다.
쌍둥이를 출산하고, 감옥에서 나온 나왈을 캐나다로 이주시킨 삼셰딘의 지도자를 만난 눈에 안대를 한 시몽은 커다란 진실(관객도 그토록 듣고 싶었던)과 마주한다. 자신을 '왈랏' 삼셰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시몽에게 눈을 가린 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볼 수 없는 시몽은 충격적인 진실을 알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는 끝내 그 진실을 알아내 어머니의 유언에 적혀있는 아버지와 형을 만나야 하기에 삼셰딘의 지도자에게 시몽은 니하 드 메이라는 자신이 찾고 있는 형의 이름을 말한다. 무서운 진실을 다가서기 위해 시몽은 용기를 낸다. 삼셰딘의 지도자는 시몽에게 니하 드 메이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준다. 전쟁 중에 폭격 받은 고아원의 아이들을 자신들이 거두어 훈련을 시켰고, 그 사이에 니하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그가 서서히 전쟁광이 되어갔다는 말도 해주지만 세월이 흘러 적군에게 잡혀 다시 그들을 위해 일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름을 바꿨는데 그가 바로 남부 지역 감옥 크파르 리얏의 고문 기술자 아부 타렉이라고 얘기해 준다. 그렇다. 그들이 찾는 형 니하드 드 메이와 아버지인 아부 타렉 둘은 동일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니하드 하르마니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자신의 진실된 사랑으로 낳은 첫 번째 아들을 찾기 위해 한 평생을 기다려왔던 나왈 마르완은 우연히 아들과 만나지만 이내 그 순간은 악몽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유서에 세상과 등질 수 있게 자신을 엎어서 매장 해달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진실을 보았고, 이제 그것들을 남아 있는 자식과 그들의 아버지이자 아들에게 마주 보게 할 작정이다. 진실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총 세 사람이지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쌍둥이 남매 이렇게 넷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아무리 풀고 풀어도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 버리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이론 수학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그 안에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고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침묵을 깨고, 진실 앞에 다가서는 것이 사랑으로 가족을 이어주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나왈은 우리에게 다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제시해주었다.
나왈 마르완은 함께 하는 것이 가족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참히 희생된 개인의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이자 엄마는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과연 그 역사가 사랑으로 묶일지 아니면 증오와 분노만을 가진 채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드니 빌뇌브의 말처럼 '개인이 진화 할 수 있다고 믿고,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정말로 실현 된다면 이 한 가족의 수난사가 행복으로 마무리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화 중간에 잔느의 지도 교수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하는 대사를 통해 영화의 주제를 숨겨 놓았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아왔던 수학은 정확하고 분명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지만, 이제 완전히 다른 모험을 시작할 것입니다. 아주 어려운 주제를 다룰 것이며, 그건 항상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될 것입니다." 1+1=2가 아니라 1이 되어버린 기이하고도 고통스러운 영화는 고독의 땅으로 관객을 인도했다. 이제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대답을 내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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