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판소리 <퍼옴자료>

艸貞 2017. 12. 11. 07:48


판소리의 성립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우나, 17세기 중·후반 무렵 우리나라 서남부 지역에서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화 기원설, 문장체소설 선행설, 무굿 기원설, 서사무가 기원설, 창우 집단의 광대소리 기원설, 광대 소학지희 기원설, 중국 강창문학 영향설 등 다각도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중 설화 기원설은 판소리 사설의 근원이 되는 설화가 존재하였고 이 근원설화로부터 판소리가 발생했다고 보는 학설이다. <춘향가>를 예로 들면 암행어사설화·열녀설화·신원설화 등이 근원설화로 언급된다. 이 근원설화를 바탕으로 판소리 <춘향가>가 형성되고, 이것이 정착되어 소설화하였다고 본다.
서사무가 기원설은 호남 지역에서 연행되었던 서사무가로부터 판소리가 발생하였다는 학설이다. 서사무가와 판소리는 공통적으로 긴 이야기 구조를 가지며, 시나위권이라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음악적으로 육자배기토리가 주를 이루며, 초기 판소리 창자들 대부분이 시나위권 무계 출신으로 이들이 속한 사회 집단의 창우들이 무의식의 연행에 참가하였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된다.
반면 서사무가에서 오늘의 판소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화·형성되었는지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한 서사무가 기원설의 대안으로서 등장한 것이 창우집단 광대소리 기원설이다. 즉 서사무가에서 바로 판소리로 분화된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 존재하면서 판소리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연희 양식으로 육자배기토리 무악의 창우집단 광대소리가 판소리의 기원이 된다고 보았다. 창우집단은 ‘화랭이패’ 또는 ‘산이패’라 이르기도 한다. 기능 및 이익 집단이자 혈연 집단으로서, 육자배기토리권(서남무악권) 세습무계에 속한 이들로 구성되고, 대대로 축적된 뛰어난 예능을 보유하고 있다. 창우들은 기능에 따라 광대·고인·무동·재인 등으로 나뉘며, 광대는 단가와 판소리를 부르는 소리광대, 줄소리를 부르는 줄광대, 고사소리를 부르는 고사광대, 선증애소리(선굿소리)를 부르는 선증애꾼등으로 나뉜다. 이들 광대들의 소리는 공연 방식, 편성, 복색, 사설 양식, 장단, 조 등 여러 측면에서 무가에 비하여 더욱 판소리와 깊은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판소리의 역사는 크게 형성기(18세기), 전성기(19세기), 전환기(20세기 전반), 보존 부흥기(1960년대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성기에 해당하는 18세기 판소리는 독자적인 공연예술로 정립되며 전문성을 갖춘 예술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 활동했던 이들로는 하한담·최선달·우춘대 등이 거론되나, 명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판소리 관련 기록으로는 만화 유진한, 1711~1791이 호남 지역을 여행하는 중에 <춘향가> 공연을 보고 남긴 <가사 춘향가 이백구>(1754)와 석북 신광수,1712~1775가 1750년 진사에 급제하여 유가할 때 거느렸던 광대 원창에게 준 시인 <제원창선> (『석북문집』 수록), 송만재의 <관우희> 등이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볼 때, 18세기 중엽 영조 무렵판소리가 연행되었으며, 열두 바탕 이상의 판소리가 존재하였고, 양반 사대부들 또한 판소리를 향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는 판소리의 전성기였다. 전기 팔명창(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고수관, 염계달, 신만엽, 김제철등)과 후기 팔명창(박유전, 박만순, 이날치, 김세종, 정창업, 정춘풍, 김찬업 등)으로 대표되는 이름난 명창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판소리 더늠이 만들어졌다. 진양조의 완성을 통한 판소리 장단의 확대와, 우조·평조·계면조뿐 아니라 설렁제·추천목·경드름과 같은 특정 분위기와 선율 진행의 특징을 갖춘 다양한 음악 어법이 등장하였다. 이로써 판소리의 음악적 표현 영역이 매우 확장되었고, 그 이전과 비교하여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또한 지역 및 사사 계보에 따라 동편제·서편제·중고제와 같은 유파가 형성되고, 판소리의 발달과 함께 판소리 창자의 사회적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판소리의 발달은 향유층 확대로 이어져 양반 및 중인들이 적극적인 판소리 향유층으로 등장하고, 판소리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판소리의 미의식에도 상당한 변모가 이루어졌다. 판소리 사설에 중국의 고사나 한문 사설이 삽입되고, 가곡 성음이 도입되었으며, 골계미를 자아내는 아니리나 재담 등은 점차 약화되거나 축약되었다.
한편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남성 소리꾼들의 전유물이었던 판소리에 여성 소리꾼이 등장하는데, 정노식, 1891~1965의 『조선창극사』에는 진채선이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소개되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판소리는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면천으로 인한 음악가들의 신분 변화와 실내 극장 및 음반·방송과 같은 근대 매체에 의한 연행 방식의 변화, 여성 음악인들의 교육 및 배출 기관으로서 권번의 등장으로 인한 교육 형태의 변화가 그것이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한 판소리 공연 문화의 변화는 판소리의 연행 공간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면서 판소리 저변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창극이라는 연극적 요소를 더욱 강화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 양식이 등장하였고, 전국적으로 분포하였던 권번을 통하여 판소리 여류창자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루어진 판소리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였다. 짧은 학습 기간과 대중적 인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활동 양상은 공력이 쌓인 바탕소리로서의 판소리가 아닌 도막소리를 낳았고, 연기와 외모를 앞세운 더욱 통속적이며 가벼운 분위기의 창극소리가 등장함으로써 소리의 질적인 쇠퇴가 이루어졌다. 이에 20세기 전반을 판소리의 전환기로 보기도 하지만 위축기 혹은 쇠퇴기라고도 한다.
판소리 창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단체를 결성하며 소리꾼들의 조직화를 꾀하였고, 정통 판소리의 복원과 전승 및 새로운 공연 형태로서 창극의 양식화를 이루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1934년 결성된 조선성악연구회이다. 20세기 전반기 판소리를 이끈 인물은 일명 근대 오명창으로 불리는 송만갑, 1865~1939·이동백, 1866~1949·김창환, 1855~1937·김창룡, 1872~1943·정정렬, 1876~1938이고, 여류명창으로는 이화중선·박록주·김소희 등이 활약하였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판소리는 동면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성 단원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여성국극만이 판소리의 명맥을 유지하며 인기를 구가하였으나, 그 인기 역시 그리 오래 지속되는 못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민족문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 정책이 시행되면서,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었으며, 1964년에 김연수·박록주·김소희·김여란·정광수·박초월이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무형문화재 제도의 지원에 힘입어 판소리는 안정적인 전승 기반을 확보하였고, 수많은 명창이 배출되며 다시금 부흥하였다. 그러나 판소리 전승에 대한 제도적 관여는 소리 법통과 유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판소리의 역동성과 현장성은 약화되고, 양식화·정형화가 심화되는 부정적 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1960~1970년대 박동진으로 대표되는 실전 판소리 복원 및 창작 판소리 작업은 1980~1990년대 임진택의 <똥바다>·<오적>·<소리내력>·<오월 광주> 등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와 젊은 판소리꾼들에 의해 창작 판소리 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내용


판소리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광복 이후의 일로, 그 이전에는 타령·잡가·창극조調·극가·소리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과 ‘소리’의 복합어이다. ‘판’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행하는 곳’이라는 장소적·행위적 의미를 비롯하여, 무엇이 시작되어 완결되기까지의 전 과정이라는 긴 서사적 구조체로서의 의미, 전문 예능인들의 연희라는 전문성의 의미를 갖는다. ‘소리’는 목소리로 연행하는 성악 장르임을 의미한다. 즉, 판소리는 열린 공간에서 전문 예능인들에 의해 구현되는 긴 서사적 구조의 이야기를 사설로 갖는 성악 장르라 할 수 있다. 가곡·시조와 같은 양반층이 즐겨 애호하였던 풍류 성악 장르와 비교하면 서사 구조를 가진 긴 이야기를 선율에 얹어 구현하는 장르로서 가사 내용 전달에 주안점을 두고, 감정을 극대화시켜 표현하는 점에서 구별된다. 판소리는 사설의 문학성과 선율의 음악성이 긴밀한 관계를 지닌 점에서 19세기 서양의 예술가곡과 비교되기도 하나, 예술가곡은 노래와 피아노 반주가 함께 어우러져 사설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비하여, 판소리는 창자 1인에 의해 사설의 문학성이 구현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판소리가 이루어지는 소리판은 소리를 하는 ‘창자’와 북 반주를 하는 ‘고수’, 감상자인 ‘청중’의 3요소로 구성된다. 판소리 창자는 작품 속의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소리’·‘아니리’·‘발림’을 통하여 구현해 내는데, 오직 한 사람의 연창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창자의 능력이 전체 소리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자는 일인다역의 역할 및 극적 상황에 맞게 소리하기 위하여 장단, 선법, 발성 등을 사설의 이면에 맞도록 다채롭게 구성한다. 고수의 기본적인 기능은 북가락으로 장단을 짚어 주고 소리의 한배를 조절하는 반주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판소리 연창자의 상대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얼씨구”, “좋다”와 같이 추임새를 넣어 창자의 흥을 돋우어 주고 소리판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창자의 상황을 살펴 소리꾼과 함께 능동적으로 소리판을 이끌어 간다. 청중 역시 단순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추임새를 통해 소리판에 적극 참여하며 공감을 표현한다. 이에 판소리 창자와 고수는 청중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처함으로써 소리판을 완성하게 되고, 결국 연행자와 감상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이와 같은 소리판의 열린 구조는 판소리가 가진 독특한 힘이다.
판소리 레퍼토리는 19세기 무렵에는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왈짜타령>, <가짜신선타령>의 열두 작품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왈짜타령>과 <가짜신선타령> 대신 <무숙이타령>과 <숙영낭자전>을 포함하여 판소리 열두 바탕이라 이르고 있으므로, 판소리는 열두 작품 이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신재효는 <춘향가>·<흥보가>·<수궁가>·<심청가>·<적벽가>·<변강쇠타령> 여섯 작품을 골라 사설을 개작·정리하였고, 20세기 전반에 이르러 <변강쇠타령> 역시 전승이 끊어져 오늘날은 다섯 바탕 만이 남았다.
판소리는 이야기 전달에 주안점을 두는 장르로서 극적 상황에 따라 장단과 악조를 배치하여 사설이 음악구조에 적극 관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기본 장단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장단이고, 특정한 분위기의 대목에서 엇모리와 엇중모리장단을 사용한다. 진양조장단은 판소리에 사용되는 가장 느린 장단으로 슬픔·화평·유장함의 분위기를 갖는다. 중모리장단은 보통 빠르기의 12박 장단으로 점잖게 무언가를 서술해 나가는 장면에 흔히 사용되고, 진양조장단과 함께 슬픈 대목에서 쓰인다. 중중모리장단은 약간 빠른 템포로 거뜬거뜬하게 나가는 장단으로,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 중 가장 기본적인 장단이다. 일상적인 대목에 흔히 사용되며, 춤추는 장면이나 경쾌하고 흥겨운 대목, 호기로운 설렁제 대목에서 중중모리장단을 주로 사용한다. 자진모리장단은 판소리에 사용되는 가장 빠른 장단으로, 이야기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되는 장면이나 빠른 나열 대목에 쓰인다. 엇모리장단은 3소박과 2소박이 번갈아 가는 혼소박장단으로 비범한 인물의 등장이나 현실세계와는 다른 독특한 정경을 노래할 때 사용되고, 엇중모리는 주로 가장 마지막 대목인 후일담에서 사용된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기본 악조는 계면조·우조·평조이다. 계면조는 전라도 육자배기토리를 기본으로 하여 음이 확대된 악조로, 시김새 사용 정도에 따라 진계면·평계면·단계면 등으로 구분된다. 진계면은 시김새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슬픈 대목에 주로 사용되며, 일상적인 대목이거나 흥겨운 대목에서는 시김새를 덜어낸 평계면이나 단계면을 사용한다. 우조와 평조의 선법적 구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을 조금씩 달리하나, 우조는 기교 없이 꿋꿋한 발성으로 소리하여 남성적이고, 평조는 화평한 느낌을 갖는다.


지역사례


전통적인 판소리 문화권은 우리나라 서남부인 경기 남부·충청남도·전라도 지역에 해당한다. 그 안에서도 전라도 동북부 지역의 ‘동편제便’, 전라도 서남부 지역의 ‘서편제西便’, 경기·충청 지역의 ‘중고제/’로 판소리 유파가 나뉜다. 판소리 유파에 대해서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 ‘대가닥’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논의되었다.
동편제는 비교적 우조調를 많이 사용하고, 발성을 무겁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는다. 정중하고 온화하면서도 씩씩하고 웅장하며, 기교와 수식이 많지 않은 창법을 사용한다. 선천적인 음량을 소박하게 그대로 드러내는, 기본에 충실한 남성적인 소리이다. 송흥록의 소리법제를 표준하여 운봉·구례·순창 등지에서 주로 전승되었다. 서편제는 계면조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기교와 꾸밈이 많아 감칠맛이 나며, 동편제에 비하여 템포가 느리고, 발림도 풍부하다. 박유전의 소리법제를 표준하여 광주·나주·보성 등지에서 주로 전승되었다.
중고제는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그 중간적 소리이나 비교적 동편제 소리에 더 가깝다 하였다. 성음의 고저가 분명하고, 전반적으로 평평하고 간결하게 진행하여 고졸한 멋이 있되, 소리 중간을 높이 들어내며 도드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동·서편제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사설을 보유하고 있고, 음악적으로는 경기·충청 지역의 음악 어법을 활용하였다. 동편제가 우조, 서편제가 계면조 사용이 많다면, 중고제는 평조 사용이 두드러진다. 20세기 전반 일제 강점기 이후로 전승이 끊어져 오늘날에는 더늠의 형태로 일부 전한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는 가곡·범패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 성악의 한 갈래로 조선 후기 민속음악광대들이 발전시킨 높은 예술성을 지닌 음악이다. 열린 공간에서 연희되는 공연 예술로서 연행자와 관객 사이에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점에서 우리 공연 예술이 지닌 개방적 성격이 확인된다. 판소리가 가진 즉흥과 신명은 살아 움직이는 연희로서 생명감을 나타내고, 부조리와 모순, 비극과 한의 정서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골계미는 판소리가 지닌 독특한 미학이다. 절제가 미덕인 양반 음악과는 달리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을 더욱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가지며, 춘향·심청·흥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들이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점에서 판소리는 서민들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소리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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