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당국선도 제31호에 실린글-기운 소통의 즐거움
기운 소통의 즐거움
의상법사 이 근 용 영산대학교 교수
소통 부재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 문제들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꽤 오래 전에 제기되었다.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주변에 여러 사회 문제가 온존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조직 간에, 관민 간에, 국가 간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촛불시위, 강경진압, 전면파업, 집단테러 같은 현상들은 소통 부재로 인한
사회문제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하듯이, 우리 몸에는 기운의 소통이 중요하다.
몸에 기운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부위가 딱딱하게 굳거나 곪거나 썩는다.
우리가 수련을 하는 1차 목적도 바로 이 기운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 데 있다.
수승화강, 수화교제, 임독맥 유통, 전신주천 같은 것들은
우리 몸 안의 기운의 흐름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유도하고자 하는 수련 원리들이다.
수련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기운이 쌓이는 것을 느끼고,
쌓인 기운을 의식으로 경락을 따라 유통시키는 훈련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식이 기운을 유도하지만,
나중에는 기운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정한 경로를 따라 유통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중에는 이 경로마저 잊고 그저 온 몸에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더 나중에는 기운이 흐른다는 것도 잊게 되면서 단지 온 몸으로 기운이 들고나는 호흡만이 존재한다.
더 뒤에는 이 들고나는 호흡마저 잊고,
자신을 잊은 망아의 단계에서 우주와 하나 됨을 느끼는 순간을 맞게 된다.
수련하는 사람에 따라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고,
그 느낌의 강도가 다를 수 있지만,
정성스럽게 수련을 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수련할 때마다 늘 같은 느낌일 수 없고 늘 그런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이라도 우주와 하나 되는 느낌을 갖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야말로 수련의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다.
국선도 수련에 입문해서 기운이 소통되는 즐거움을 체험한 사람은 수련을 평생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진기단법 이상의 수련자 중에 꾸준히 수련을 하는 분들은 소통의 즐거움을 체험한 분들일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스스로 기운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아니면 이상이 있는지도 감지하게 된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외부 대상과 교감하는 느낌도 갖게 된다.
어떤 장소에 가거나 어떤 사람과 접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기운이 북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기운의 소통을 체험한 사람은 더 세고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장소나 사람을 가린다면 아마 이 탓일 것이다.
적극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일부러 기운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거나 그런 사람을 찾아서 만나기도 한다.
수련하는 분들이 산을 즐겨 찾거나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공보다는 천연을 더 좋아하고,
허위나 가식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이나 투박함을 더 좋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특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소에 늘 유지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곳도 가야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과도 만나고 얘기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성격과 취향, 직업,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운의 소통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운은 주고받는 것이다.
기운은 머무르지 않고 늘 흐른다.
기운을 인위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거나 멈추게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우리 몸도 오장 육부의 기운이 잘 돌아야 건강하다.
어느 한 장기의 기운이 강하고 다른 장기의 기운이 약하면 병증으로 나타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국민 사이, 여당과 야당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종교와 종교 사이의 기운이 잘 돌아야 한다.
서로 세력만 키우고 의사소통을 잘 하지 못하면 분쟁이 생기고 비극이 생길 수 있다.
기운이 통하지 못하면 경직되고,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충돌이 야기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운이나 의사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관점은 이미 선각자들이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이율곡 선생이 언로(言路)가 트여야 나라의 정사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주창한 것이나,
19세기 후반의 실학자인 혜강 최한기가 운화(運化)의 개념으로 일심과 국가,
우주의 순환원리를 설파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사회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보다,
뽀족하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어려운 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려움을 풀어가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될 수 있지만,
그동안 계속 제기되어 왔던 소통의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소통을 하자고 해서 바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선도 수련을 시작해서 먼저 부딪치는 어려움은 조신법 수련이다.
평소에 잘 쓰지 않아 굳어 있는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고,
굴신 운동을 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수련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할 정도로 크다.
이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 호흡의 어려움이 있다.
평소에 쉽게 아무 의식 없이 해왔던 호흡을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하고,
또 점점길게 해가자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동작은 힘든데 고요한 호흡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게 될까 싶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동작과 호흡을 조화롭게 끌어가면서
편안한 호흡을 할 수 있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 다음의 어려움은 마음 공부에 있다.
조신도 어느정도 되고 호흡도 안정되었는데, 이제는 무수한 잡념들이 밀려와 수련을 방해한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무심코 지나쳤던 일,
감정의 기복을 겪은 일이나 말 같은 것들이 밀려들어 집중이 잘 안 된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밀려오는 상념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다 보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고,
정성을 기울여서 해가다 보면 극복된다.
조신, 호흡, 마음 수련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꼭 순차적이라기보다는 서로 상보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몸이 부드러워지면서 호흡이 안정돼 가고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아가 국선도의 육조법 수련을 모두 같이 조화롭게 닦아 나갈 때,
수련의 어려움을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국선도 수련인이 기운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뒤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도 언뜻언뜻 즐거움을 맛볼 수는 있지만,
진정한 소통의 즐거움은 각고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오는 것이다.
즐거움은 자기 몸 안의 기운 소통보다는 나 아닌 다른 대상과 기운이 소통되는 것을 느낄 때 배가 된다.
이 대상은 산, 강, 바다일 수도 있고, 풀이나 벌레, 나무, 바위일 수도 있고, 짐승이나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다른 대상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어느것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순간순간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된다.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도와주고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탐냄, 성냄,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애쓴다.
내가 나쁜 기운을 갖거나 보내면, 그 기운이 거꾸로 스스로를 해치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겪는 여러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도,
국선도인이 소통의 즐거움을 터득해 가는 과정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에는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존재한다.
기업, 정부, 국회, 정당, 경찰, 법원, 병원, 학교, 교회, 시민단체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각각의 행위 주체들이 우선, 내부적으로 기운이 원활히 유통되게 할 필요가 있다.
상하 간에, 부서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부정한 곳이 드러나고 경직된 제도가 개선되며 조직 전체가 활기찬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이 과정에 여러 진통이 따르는 것은,
국선도인이 수련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조직의 비리나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이 개선되는 것은,
우리 몸속의 기운이 막힌 곳이 뚫리고 장기가 보강되는 것과 같다.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몸의 경락을 통해 기운이 잘 흐르는 것과 같다.
외부 조직이나 환경과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호흡이 고르게 잘 되는 것과 같다.
조직의 비전과 이념이 잘 갖추어지고 추진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되는 것과 같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행위 주체가 순전히 독자적으로 존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다른 행위 주체들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
영역에 따라서는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조직도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글로벌한 체계로 갈수록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더 광범위해지고 풍부해진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하는 사회의 각 조직이
자신의 존립에 다른 조직이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자기 아닌 다른 대상과 기운이 소통함을 느껴가는 것과 같다.
한 기업이 방류한 폐수나 탄산가스가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옴을 인지해서 스스로 정화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같다.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면서 냉동되어 있던 유기물들이 썩으며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더 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고 한다.
지구 자기장이 약화되면서 지구 보호막 역할을 못하게 되는 조짐도 보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이 제기된다.
모두들 어렵다고 하는 이 때에,
국선도인이 수련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발휘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기운 소통의 즐거움을 누구보다 실감했기 때문이다.
기운을 소통시키는 방법은 각 영역에서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좋다.
관심과 따뜻한 마음을 보이고,
정겨운 말 한 마디를 건네는 데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