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오사카성에 가다.
오전에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마가린 바른 빵과 모닝빵과 여러가지의 빵으로
아이들에겐 우유와 요플레를 어른들은 커피와 녹차를 마시는 것이 아침 풍경이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남겨 두었던 반찬과 몇가지를 더해 녹크상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교와 유치원에서 마실 차를 준비해준다.
녹크상 점심도시락
일찍 일어나 남편도시락을 싸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다.
나도 이런 시간을 보낼적이 있었건만 새삼스러이 주부들의 가사노동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오늘은 드뎌 오사카역사박물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모리구치에서 지하철을 타고 谷町四丁目에서 걸어가면 되는데 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오늘이 마침 매주 화요일은 쉬는 날이다.
장미꽃
오사카역사박물관
거리에 핀 장미꽃이 겨울은 아닌듯 한데 파고드는 바람은 약한 노인네 입돌아 가게 춥다.
또 추운것에 비하면 아이옷은 얇게 입혀 감기들까 걱정이다.
깨끗한 거리를 지나는 마루참과 사에짱
마루참의 미안하다는 말과 나는 괜찮으니 집으로 다시 가자고 했다.
그러자 나왔으니 오사카조에 가잔다.
우리는 오사카공원을 지나서 걸어서 갔다.
매화나무 1250그루와 벚나무 4500그루가 피어 봄에는 그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오사카성이라면 그 하시바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종결하고 천하를 통일하면서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위해 천수각을 축성한다.
사방으로 해자를 파놓아 난공불낙의 요새를 만들어 그 규모도 대단하다.
깊고 큰 해자의 오사카성
오사카성의 해설사 할아버지
오사카성은 일본전역에서 관광차 방문들을 하는데
이 분들은 유료로 오사카성과 하시바히데요시의 삶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고 한다.
오사카성 입구
손 닦는 물
오사카성 큰돌
오사카성을 쌓은 큰돌들
오사카성 안에는 이렇게 큰 거석들이 많은데 어떻게 그 큰 돌을 운반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오사카성에는 전역에서 방문하는 일본인도 많았고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날씨가 아열대기후임을 증명하는 나무?
오사카성
황금으로 된 다실까지 만들어놓고,
외곽까지도 금박을 사용해 하시바히데요시의 권력과 힘과 부를 과시했다.
그는"이슬로 태어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던가,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의 꿈" 이라는 시 한수를 남기고 63세에 눈을 감았다.
그는 오와리나카무라 마을의 농부이며, 군졸인 평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작은 몸과 쪼글쪼글하게 못생긴 원숭이얼굴을 한 (히데요시)는 그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천진난만했다.
여느사람에게는 한낱 망상으로 그치거나 안개나 구름처럼 사라져벌릴 일도 히데요시는 끈덕지게
그 착상을 갈고 다듬어 기어이 살려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그의 행동거지가 졸렬하고 조잡해 보이지만, 그것이 처세 철학이었다.
히데요시의 정실부인 네네 즉 기타노만도로코는 아이를 낳지 못했으며
측실인 요도부인 즉 자차히메가 낳은 첫 아이 쓰루마쓰가 홍역으로 죽자
이에 크게 상심한 히데요시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조선-명의 정벌을 감행한다.
사실 이전부터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허세를 부렸지만 그 말을 믿은 사람은 없었으며
실행에 옮긴다 하더라도 일본 본토에 미칠 부정적인 여파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히데요시가 쓰시마 성주 소 요시토모와 고니시 유키나가를 시켜 조선의 왕인 선조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때에도 요시모토와 유키나가는 이시다 미쓰나리와
모의하여 있지도 않은 협상내용을 조작, 조선이 길을 빌려 주기로 했다는 식의 내용을
히데요시에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쓰루마쓰의 죽음으로 상심한 히데요시가 정말로 조선으로 출병을 감행하면서
일본 전체가 술렁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자차히메가 임신하여 히로이 즉 히데요리를 낳았다.
히데요리는 히데요시가 죽을 당시 6세에 불과했다.
히데요시는 출신이 미천했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고 교양이 없는 인물로 여겨지기는 했으나
혼자 공부하여 시를 지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하며 다도를 배워 다도회를 베풀고 솜씨를 자랑했다.
그가 추진해온 전국통일 정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계승되어 평화로운 도쿠가와 시대의 기초가 되었다.
이에 노부나가는 떡을 찧고 히데요시는 천하라는 떡을 빚고 이에야스는 떡을 먹는다 라는 말대로다.
오사카성내의 정원
한국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인 반면에,
일본의 정원은 인공적인 자연미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산하는 유달리 아름답기 때문에 정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특별한 정원방식을 따로 개발할 필요가 없었고,
경관이 좋은 산천의 한 대목을 잘라 담을 쌓고 정자를 지어 즐기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정원은 정원으로서 실용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며,
산, 천, 바다, 숲등의 자연경관들을 인공적으로 조성하였다.
일본정원의 구체적인 조원 수법을 보면, 연못 속에 여러 개의 작은 섬을 배치하여 소나무를 심고
못가에 소금 굽는 연기를 솟아오르게 하여 안개를 대신하며,
자연석을 활용할 때도 화폭에 경물을 배치하듯 완벽한 구도를 추구한다.
돌과 나무사이에 생겨나는 아름다운 균형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생장속도가 느린 상록활엽수를 많이 심고 나무도 취향에 맞추어 다듬는다.
오사카성내의 벗나무
오사카공원의 까마귀
일본에는 까마귀가 길조라고 하여 여기저기서 까마귀를 많이 볼 수 있다.
마루참과 사에
관람이 끝나고 오사카성내에 있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내 메뉴판
식당내 메뉴판
우동
우동이 한그릇에 600엔!
어딜가도 마시는 녹차!!
사에도 우동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어린이용 의자를 갖고와 아이를 앉힌다.
어린이의 안전이 우선이고 언제 어디서고 친절한 일본인들..
친절이 몸에 배 선진국다운 매너가 세련되보여..
거리에 휴지하나 없는거봐..
이런 힘이 일본을 유지하는게 아닌가..
일본인들은 서로 똘똘 뭉쳐있는 느낌..?
한국은 정은 많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느낌..?
그래도 살기는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좋은것 같아..
주문하면 금방 따뜻한 피자배달이 오쟎아..
먹고 살만해지면 자연스레 매너가 생기지..
우리나라도 국력을 키우기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해..
통일이 되어야해..
얼른 통일이 되어 강한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큰 기상을 멀리보고..
국회에서 당파싸움만 할때가 아녀..
통일을 위해 온 힘을..
강한 한국만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설 수 있고 세계중심이 되는거지..
중국의 쪽수를 뭘로 이길겨..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를 뭘로 이길겨..
일본의 선진성을 뭘로 이길겨..
100년안에 일본은 섬으로 갈아앉는다는 학설도 있지만..
지금의 일본의 힘은 강력하기만 하더라
경제력에서도 일본인들의 인재성에서도..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통일을 하고..
하나된 한국의 힘이 뻣치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찬란한 한국의 위대한 역사가 오는 날..
민간인으로 일본집을 방문했어도
나 한국인인건 어쩔 수 없나봐..
한국이 커다랗게 걱정이 되니 말이야
우선 세계 중심의 핵이 되고자 하면 힘이 있어야제..
사고를 넓혀보면
개인과 개인간의 벽을 허물고
나라와 나라간의 벽을 허물고
세계는 하나
세계도 지구라는 개념으로 보아 아끼고 가꾸고..
이 세상에서 내것이란 없는게지
다만 잠시 머물다 갈 뿐..
이것이 내가 일회용품을 안쓰고 컵을 가져다니는 이유라 한다면..
욕심이 아니라 실천을 지향하는 삶으로..
사에는 우동을 "찌루찌루" 라고 한다.
집에서도 밥맛이 없으면 찌루찌루 달라고 하는게 무척 구엽던데..
일본인들은 우동을 참 좋아해
가쓰오 우동은 맛있지..
무엇보다 일본식 간장소스가 맛있어..
달달하면서 짠 맛이 강하지 않고 순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동백꽃
동백꽃
마루참은 치사키의 마중을 나갔고 난 오후에 시간이 조금나서 공원에 자전거타러 나갔다.
우리나라의 둔치라고 할만한데 오사카 시민들을 위해 잘 가꾸어 놓았다.
"YODOGAWA RIVERSIDE PARK"라는 간판이 보인다.
디카를 안가져 나온게 후회가 되었다.
김치볶음밥과 치킨
집에 들어가 저녁준비를 함께 하였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었고 마루참은 치킨과 ?야끼를 했다.
아이들은 김치가 맵다고 안먹었지만 어른들은 김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