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여행

1)쿠타 해변에 가다-열째 날

艸貞 2008. 4. 21. 19:21

오늘이 해변 마지막 날이 되겠기에 오전에 11시쯤 바닷가에 갔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조개껍데기도 다시 들고 가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내 욕심에 다 가지고 가지는 못하고 아주 예쁜 것은 조금 남기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미안함의 발자욱을 남긴 체.
무엇이든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움이 아닌가.
나도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 남편을 더욱 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로,
아이들에겐 더 따뜻하고 자애로운 엄마로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울 엄마가 엄마의 따스함으로 우리 집 아랫목을 늘 준비해 놓았듯이,
엄마께 받은 사랑 이제 다시 내 가족은 물론 이웃을 위해 더 마음을 열어야 함과
아울러 겸손함도 나 이번 여행길에서 자연에게 배웠다.
내 마음속은 여행의 만족함으로, 느낌으로 온통 차버려 이젠 아무것에도 고프지 않다.
다만 엄마 잃은 서러움을 이곳에 묻으려니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져 귓가에 울린다.
서럽디 서럽게 엄마를 불러보고 싶다.
쿠타 해변은 알고 있으리라.
엄마 잃은 슬픔에 한 여자가 이곳에서 그리움을 토했노라고.
바닷가에서 나시참푸르 먹었는데 그만 밥 파는 아줌씨 눈에
모래가 들어가 눈은 팅팅 붓고 뻘겋게 충혈 되었다.
덴파사르가 집이라는데 여기서 나고 자랐으면 눈에 모래가 들어갔을 때의
처치방법은 알리라 생각했는데 눈을 비비고 건드려 이미 손을 쓰기는 늦어 난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눈을 건드리지 말고 눈물을 흘리든가 깨끗한 흐르는 물에 눈을 깜빡여야 한다고 했었는데
왜 모래 위 해변에서 장사를 하면서 그 상식을 몰랐을까.

 

 사진1 - 쿠타해변에서 밥을 파는 아줌씨-눈병만 그 분

 

 사진2 - 우리네 옛 곤로에 라면을 끓이고 있다.


모두들 너무 순박한 건지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리는 모습들에 안타까움이 솟는 시간들이기에
난 인도네시아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나보다.
오늘은 바닷가에 앉아 파인애플도 먹었다.
파인애플을 깎는 아줌씨의 솜씨가 예술이다.
칼집을 내어 예쁘게 빙빙 돌리고는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조각내어 준다.
맥도날드에 앉아서 초코 아이스크림 먹고는 곧바로 이곳을 떠나는 아쉬움에
앉아 죽 때리면서 다시 멀리 바닷가를 쳐다본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는 아름답고, 끝이 안 보이는 수평선은 태평스레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밟아 보기위해 모래사장으로 나왔을 때
맛사지 아줌씨 한분이 오셔서 또 졸라댄다.
45살이라는데 생활의 고단함인지 주름은 깊게 패인 체.
나를 보고는 35살이란다.
헉~ 왠 대박! 난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야 한다니까.
그분 말씀이 한국 사람들은 패키지 여행으로 많이는 오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사진만 찍고는 금방 돌아가기 바빠서
한국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는 많지 않단다. 아니 아예 없단다.
이 원인이 길거리에 한국인은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지.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편리함을 추구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자유여행이 아니면 싱겁던데.
0주희도 그랬지 자유여행이 훨씬 재밌고 패키지는 여행도 아니라고.
아줌씨는 한국인은 패키지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하면서 나랑은 친구란다.
그러면서 친구니까 머리(브랜딩)도 하고 페티규어, 메니큐어 하란다.
사실 난 이번 여행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레게머리였다.
브렌딩은 어줍잖이 시시해서 싫고 전통 레게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비용이 150,000rp다.
한화로 환산하면 정말로 싼 비용이나 가난한 배낭여행객은 인니 인처럼 지내야 하기에 포기했다.
예전엔 이 일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경쟁자가 많이 생겨 수입이 없단다.
남편은 타투를 하고 있고 아침마다 오토바이로 덴파사르에서 이곳으로 출근한단다.
딸만 셋을 두어 섭섭하단다.
인도네시아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한가 보다.
앞으론 딸 가진 부모가 더 좋다고 하자 크게 웃는다.
큰 딸은 결혼해서 손자손녀가 하나씩 있단다.
젊은 할머니라 하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이다.
얘기하고 있는데 앙드레가 부른다.
오늘이 작별의 날이니 불렀단다.
그에게 말한 것이 언제인지도 몰랐는데 그걸 기억하니 감사했다.
그의 친구들은 내게 장모님이라 부르며 장난을 치는 모습들이 귀엽다.
서로의 안녕과 건강을 빌면서 쿠타 해변을 빠져 나왔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비빔면 사왔다.
오늘은 햇빛을 많이 받아 그런지 더워 선풍기를 틀었다.
그래도 처음처럼 화끈거리거나 따갑진 않았다.
나 완전 적응됐어.
비빔면을 만들어 저녁 식사하고 있는데 잠시 정전이 되었다.
어릴 적에 많이 당해본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아이는 어둡다며 마트에 가서 양초를 사오란다.
양초야 있겠지만 어둠에서 기다리다 보면 불이 들어오겠지 잠시를 못 참고,
난리 통에 쌀 없으면 라면 먹으라는 식이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전야제를 해주는 거라 하니 배시시 웃는다.
나보고 왜 그렇게 인니편이냐면서.
우리가 그랬듯이 지금 인니도 이런 과정을 겪으며 발전하는 거라 하자
아이는 그래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좋다나.
난 불빛 없는 이런 생활도 괜찮기만 한데.
*비용 나시참푸르:5,000rp
과자;1,000rp
아이스크림:3,000rp
파인애플:20,000rp
맥도날드아이스크림:3,000rp
비빔면:5,500rp